안녕하세요~
제가 최근 올리고 있는 시리즈(
'주식투자자가 알아야 할 경제지식')의 제 2편(
"부동산 버블 붕괴의 방아쇠, 누가 당겼나?")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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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버블 붕괴의 방아쇠, 누가 당겼나?
2002년부서 쌓아올린 전세계적인 바벨탑, 부동산시장의 버블을 터트린 것은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었다.
부동산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전세계 경기가 회복된 반면, 인플레이션이 억제되자 중앙은행들의 정책금리 인상은 하염없이 뒤로 미뤄졌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1~2년 이상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게 되지만, 2005년 당시 선진국의 인플레 수준은 역사적으로 볼 때 아주 낮은 수준에 억제되어 있었다.
‘경기회복•물가안정’의 환상적인 조합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 때문이었다. 디플레이션이란 물가가 하락하는 현상이 상당 기간 이어지는 것으로, 중국의 대외 수출 물가는 2000년대 중반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인테넷 쇼핑의 비약적인 발전과 월마트 등 대형 할인점의 규모 증가에 발맞춰, 저가의 중국산 공산품은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했던 것이다.
<그림 5> 중국과 일본의 대미 수출물가 추이
자료: 미국 상무부.
미국 등 선진국 가계가 중국산 제품에 중독되어가는 동안, 중국 경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먼저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에 따른 해외 자금의 유입으로 부동산시장에 거품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기업들은 우호적인 해외 시장 여건에 발맞춰 설비 증설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실질 임금도 상승해 2002∼2008년 연 평균 임금이 11.5%, 그리고 누적 기준으로는 112% 상승하였다.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소비재에 대한 수요도 증가해, 2002년의 승용차 생산량은 59만 대에 불과했지만 2008년에는 무려 420만대로 거의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중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와 가계 소비의 증가는 원유 등 원자재 시장에 거대한 수요를 창출했다. 중국의 2000년 원유 수입규모는 584만 톤에 불과했지만, 2008년에는 1,491만 톤으로 거의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철광석도 같은 기간 583만 톤에서 3,701만 톤으로 무려 7배 가까이 증가해, 전세계 원자재 시장은 일대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2000년 말 국제 원유가격(WTI, 서부 텍사스 산 중질유 기준)은 1배럴에 26.8달러에 불과했지만, 2004년 말에는 43.4달러 그리고 2007년 말 96.0달러로 폭등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국제 구리가격도 1,827달러에서 3,150달러, 그리고 2007년 말에는 6,675달러로 급등했다.
<그림 6> 중국의 원유 및 철광석 수입 추이
자료: 중국 해관총서.
2004년을 고비로 원자재가격이 급등하자, 선진국 경제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원가 상승 영향으로 중국산 수입제품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한 데다, 휘발유를 비롯한 각종 생필품 가격마저 상승해 중앙은행들이 점점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전세계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이 아직 초기 국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정책금리를 여전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했지만, 인플레이션이 점점 가속화됨에 따라 그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영국, 그 다음 미국 마지막으로 유럽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인상했으며, 정책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상품가격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부각되자 금리인상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게 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이를 살펴보면, 2003년 말 미국의 정책금리는 1.0% 수준에 불과했지만, 2005년 말에는 4.25%로 인상되었고 2007년 6월 말에는 5.25%까지 상승했다. 정책금리가 상승하자, 부동산시장은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고정금리로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았다면 금리인상의 충격이 덜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변동금리 대출(ARM)의 비중이 2004년부터 30%선을 넘어섰기에, 금리인상의 충격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특히 기존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갈아타는 이른바 모기지 리파이낸싱(re-financing)가 전체 부동산 담보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3년 한 때 70%선까지 상승했었지만, 금리인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5년부터 그 비중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리파이낸싱 수요가 줄어듦에 따라 미국 가계는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동산시장 전체의 거래도 위축되었다. 물론 2006년부터 일부 금융기관들이 정상적인 신용도를 갖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대출(=서브 프라임 대출)을 늘렸기에, 부동산가격이 바로 하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제 상품가격의 급등을 계기로 소비자들의 살림이 어려워지고, 또 시장금리마저 계속 상승하자 미국 부동산시장은 2007년부터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라스베가스와 플로리다 등 주택공급이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부터 가격 하락사태가 시작되었지만, 2008년 하반기에는 결국에는 시카고와 뉴욕 등 상대적으로 수요기반이 강한 지역까지 폭락사태가 확산되고 말았다. 미국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이하 S&P) 社에서 집계한 미국 20대 주요 도시 주택가격은 2009년 말까지 고점 대비 32.6% 폭락했으며, 특히 피닉스와 라스베가스의 주택가격은 각각 54.1%와 52.0% 하락했다.
모든 자산시장이 다 비슷한 모습을 보이지만, 특히 '착공에서 입주'까지의 시차가 큰 주택시장은 한번 가격이 무너지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2002~2006년 동안 연 평균 230만 호 이상의 신규주택이 공급되고 있었기에, 주택가격의 하락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주택이 공급되는 '악순환'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2008년 1월부터 대대적인 재정정책이 시행되었지만, 이미 하락세로 돌아선 미국 부동산경기는 살아날 줄 몰랐다.
<그림 7> 변동금리 대출과 리파이낸싱이 차지하는 비중 변화
자료: 미국 모기지은행 협회(MBAA).
<끝>
다음에는 제 3편, "미국 주택가격 하락이 세계 경제 위기로 이어진 이유는?"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즐거운 투자되시길~
정말 서브프라임 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걸까요??
그래서 단지 인플레만으로 금리를 올렸던 걸까요??
인플레보다 부동산 붕괴가 더 무섭다는걸 일본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을텐데요?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엘리트들이 결정한 행위 치고는 너무 엄청난 사고였지 않나 싶어서요
금리를 인상할수 밖에 없었던 다른 이유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면 정치역학적 구도라던가.. 당시 금융시장 메이져들의 음모론적 포지션이라던가..
인구론적 구조때문이라는 설도 있던데.. 왜 미국의 엘리트들만 그런 경고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궁금합니다..